
예전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 얘기를 아직도 가끔 떠올립니다. 출입 기록 자료를 눈앞에 들이밀어도 "시스템이 이상한 거 아니냐"며 오히려 억울해하던 그 표정이요. 그때는 그냥 낯이 두꺼운 사람이라고 넘겼는데, 나중에 뇌과학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그게 단순한 뻔뻔함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글은 그 궁금증을 따라가며 정리한 내용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저 사람은 자기가 거짓말하는 걸 알면서도 저러는 거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뇌는 생각보다 훨씬 교묘하게 자기 자신을 보호합니다.
토론토대학교, UC샌디에이고, 듀크대학교 연구진이 함께 진행한 행동경제학 연구에서, 참가자들에게 반복적으로 부정직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을 준 뒤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측정했습니다. 거짓 행동을 반복한 참가자들도 자신을 여전히 "정직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게 이 연구의 핵심 결론입니다. 연구팀은 이를 자기개념유지(self-concept maintenance)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자신이 나쁜 사람일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피하려고, 뇌가 내부 기준을 조금씩 슬그머니 낮추는 심리적 방어 과정을 뜻합니다.
"이 정도는 거짓말도 아니야"라는 식으로 기준이 조금씩 이동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뇌 안에서 거짓말과 사실의 경계 자체가 흐려집니다. 참고로 이 연구는 발표 이후 큰 주목을 받았지만, 2018년 대규모 재현 연구에서는 원 실험과 반대 방향의 결과가 나오기도 했고, 2024년에는 학술지 측이 초기 실험 데이터의 출처에 의문을 제기하며 우려 표명(Expression of Concern)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이론을 "확립된 사실"이라기보다는 "설득력 있는 하나의 설명 틀"로 받아들이는 게 더 정확합니다.
- 거짓 행동을 반복해도 자기 이미지는 "정직한 사람"으로 유지되는 경향이 관찰됨
- 불편한 자기 인식을 피하려고 내부 기준을 조용히 낮추는 과정으로 설명됨
- 다만 이 이론은 재현성 논란이 있어 절대적 정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참고할 설명 틀로 보는 게 적절함
솔직히 이 부분이 제일 소름 돋았습니다.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면 거짓 버전이 진짜 기억의 자리를 실제로 차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지만 뇌과학적으로는 꽤 근거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억을 녹화된 영상처럼 저장됐다가 그대로 재생되는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캐나다 맥길대학교의 카림 네이더(Karim Nader)와 올리버 하르트(Oliver Hardt) 교수는 Nature Reviews Neuroscience에 발표한 리뷰 논문에서, 기억은 꺼낼 때마다 다시 쓰여지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기억의 재공고화(reconsolidation)라고 부릅니다. 기억을 회상하는 매 순간 그 기억이 재구성되며, 당시의 감정과 기대, 맥락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는 신경학적 과정입니다(Nader & Hardt, "A single standard for memory: the case for reconsolidation," Nature Reviews Neuroscience, 2009).
거짓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거짓이라는 걸 알고 말하지만, 그 거짓 버전을 반복해서 꺼내는 과정에서 뇌가 그것을 계속 재구성합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뇌 입장에서 어느 쪽이 원본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예전 직장 동료가 출입 기록 앞에서도 표정 하나 안 바뀌었던 그 장면,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 기억이 실제로 재편돼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현상은 습관적 거짓말쟁이에게만 일어나는 특수한 일이 아닙니다. 누구든 원하는 방향으로 기억을 기대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잘못된 버전을 진짜로 떠올리게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이 과정이 훨씬 더 자주, 강하게 작동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에서 이런 사람들이 잘 안 걸린다는 보고가 나오는 것도, 뇌가 그 내용을 이미 진실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케팅팀에서 일하는 지인이 예전에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팀 동료 한 명이 처음엔 숫자를 조금 부풀리는 수준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대담해지더니 나중엔 팀 전체가 다 아는 수준의 거짓 보고를 아무렇지 않게 하더라는 겁니다. '저 사람은 왜 점점 더 대담해질까' 궁금했는데, 실제 연구에서 그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닐 개럿(Neil Garrett), 탈리 샤롯(Tali Sharot)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거짓말을 반복할 때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관찰했습니다. fMRI는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는 정도를 실시간으로 영상화하는 장비입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첫 거짓말을 할 때는 공포와 죄책감을 처리하는 편도체(amygdala)가 크게 활성화됐지만, 거짓말이 반복될수록 그 반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Garrett et al., "The brain adapts to dishonesty," Nature Neuroscience, 2016).
이 현상을 편도체 둔감화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자극에 의해 죄책감과 불안을 처리하는 편도체의 민감도가 점점 낮아지는 현상입니다. 더 흥미로운 건, 편도체 반응이 크게 떨어진 사람일수록 다음번에 더 큰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까지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이 연구는 재현 논란 없이 비교적 널리 인용되는 편입니다.
처음엔 작은 거짓말도 어딘가 어색해 보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거리낌 없이 큰 거짓말을 해낼 때 주변에서 '이 사람이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당황하게 되는 그 변화, 그게 브레이크 장치가 서서히 무뎌지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 첫 거짓말 시 편도체가 강하게 활성화되며 죄책감과 불안이 발생
- 거짓말이 반복될수록 편도체 반응이 점차 감소(둔감화)
- 반응 감소폭이 클수록 이후 더 큰 거짓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짐
이건 저도 계속 조심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 잘못이 아니야"라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위험하니까요.
인사팀에서 일하는 지인이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거짓 보고를 올리는 직원에게 "뇌가 그렇게 작동하는 거니 이해해줘야 한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더니, 조직 안에서 오히려 그 행동이 용인되는 분위기가 생겨버렸다고 합니다.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 경계를 흐리는 건 설명 방식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활용 방식의 문제입니다.
또 하나, "화내지 말고 팩트만 전달하고 거리를 두라"는 조언은 이론적으로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상대가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더 만들어내거나, 자기 이미지를 지키려고 오히려 더 세게 역공을 펼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상담 쪽 친구가 지적했듯, 가족이나 배우자처럼 거리를 두기 어려운 관계에서는 이 조언을 그대로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면서 읽어야 하는 조언입니다.
정리하면, 습관적 거짓말은 단순한 성격 문제를 넘어서는 현상으로 설명되곤 합니다. 자기개념유지, 기억의 재공고화, 편도체 둔감화가 맞물리며 그 사람의 뇌가 거짓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진짜라고 믿는 방향으로 서서히 굳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다만 이해와 용인은 다릅니다. 특히 조직이나 공적인 관계에서는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뇌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을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내용이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지점은, 거짓말하는 사람을 설득하거나 바꾸려는 시도보다 스스로의 심리적 경계를 어떻게 그을지 고민하는 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Mazar, N., Amir, O., & Ariely, D. (2008). The Dishonesty of Honest People: A Theory of Self-Concept Maintenance.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45(6), 633–644. (2024년 학술지 측 우려 표명 및 2018년 재현연구 결과 참고)
· Nader, K., & Hardt, O. (2009). A single standard for memory: the case for reconsolidation. Nature Reviews Neuroscience, 10, 224–234. nature.com/articles/nrn2590
· Garrett, N., Lazzaro, S. C., Ariely, D., & Sharot, T. (2016). The brain adapts to dishonesty. Nature Neuroscience, 19, 1727–1732. nature.com/articles/nn.4426
· 영상 참고: youtube.com/watch?v=qiPZCN7q-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