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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만 만나는 게 아니라, 내가 반복하고 있었다

by 가치생산자16 2026. 8. 17.

지난달 대학 동기 모임에서 친구 하나가 또 헤어졌다는 얘기를 꺼냈다. 처음엔 그냥 연애운이 없나보다 하고 넘겼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친구가 만나는 사람들, 헤어지는 방식, 심지어 헤어진 뒤 하는 말까지 매번 똑같았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만 계속 걸리는 걸까, 아니면 뭔가 다른 게 작동하고 있는 걸까. 그날 이후로 이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친구가 이번에 헤어진 사람도 처음엔 다정했다가 갈수록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유형이었다고 했다. 그런 사람한테만 자꾸 끌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은 그냥 웃어넘겼는데, 술이 좀 들어가자 친구가 아버지 얘기를 툭 던졌다. 원래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분이었다고. 그 순간 뭔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고 부른다.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고통스러운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다시 재현하려는 충동을 뜻하는 개념이다. 프로이트가 처음 정리한 이 개념을 쉽게 풀면, '과거의 상처를 이번엔 다른 결말로 끝내고 싶다'는 무의식의 시도에 가깝다. 냉정한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크다면, 무의식은 비슷하게 냉정한 상대를 골라서 이번엔 해피엔딩을 만들어보려 한다. 문제는 현실에서 이 시도가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는 점이다.

이게 꼭 연애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예전에 알던 지인 중에 주식으로 크게 손실을 본 뒤 오히려 더 집착적으로 매매에 매달리던 사람이 있었다. 과거의 실패를 성공으로 덮어 재포장하려는 무의식이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 셈이다. 친구 얘기를 듣다가 이 지인이 자연스럽게 겹쳐 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예전 회사 팀장님이 떠올랐다. 관리직이었는데 유독 팀원들과 트러블이 잦았다. 처음엔 팀원 쪽 잘못처럼 시작되는데, 이상하게 그게 점점 커져서 결국 팀원이 폭발하고 퇴사하는 식으로 끝나는 패턴이 반복됐다. 인사팀에 있던 지인이 이 얘기를 듣더니, 그 팀장님은 매번 본인이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데 정작 상황을 키우는 쪽은 본인인 것 같다고 했다.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도 솔직히 그 말이 맞다고 느꼈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개념이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다. 자신의 내면에 억압된 부정적 감정이나 충동을 상대방에게 투사하고, 상대가 실제로 그 감정대로 행동하도록 무의식적으로 유도하는 심리 기제를 말한다. 처음 들으면 믿기 어렵지만, 실제 관계에서는 생각보다 자주 관찰되는 패턴이다. 경계선 성격 구조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이 방어기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은 미국정신의학회 학술지(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에 게재된 임상 추적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이 연구는 16년에 걸친 추적 관찰을 통해, 투사적 동일시와 분열(splitting)이 다른 성격병리군과 구분되는 특징적 방어기제임을 보여준다.

'버림받을 것 같다'는 강한 불안이 있는 사람은 상대방을 끊임없이 몰아붙이고 확인하려 한다. 상대가 안심시키려 애써도 불안은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더 세게 밀어붙이는 쪽으로 간다. 결국 지친 상대가 떠나면 '역시 나는 버림받았어'라는 결론으로 되돌아온다. 나쁜 사람을 골라서 만난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문제는 당사자 입장에서 자신이 정말 피해자인지, 아니면 스스로 관계를 몰아붙이는 쪽인지 구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점이다. 밖에서 보면 패턴이 보이지만, 안에서는 매번 진짜로 상처받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개념을 스스로에게 함부로 적용해 자가진단 도구로 쓰는 건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기 친구가 했던 말이 계속 걸렸다. 자기한테 잘해주고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면 며칠 못 가서 재미없다고 정리했다는 것, 반대로 감정적으로 들쑥날쑥하고 애태우는 사람한테는 오히려 강하게 끌린다는 것.

저도 주변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두 번 들은 게 아닌데, 이게 그냥 개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번에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애착이론을 정립한 존 볼비(John Bowlby)에 따르면, 어린 시절 형성된 애착 관계는 이후 삶 전반의 대인관계 방식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내적 작동 모델(internal working model)로 자리잡는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차가운 환경에서 자란 경우, 그 불안한 상태 자체가 '익숙하고 안전한 것'으로 학습되면서 오히려 안정적인 관계를 낯설고 지루하게 느끼는 경우가 생긴다. 성인 애착에 관한 최근 연구들 역시 초기 애착 경험이 성인기 대인관계 패턴 형성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관련 연구(PMC 수록 논문)에서도 애착 유형이 이후의 정서적 반응 방식을 매개하는 변수로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상담 관련 일을 하는 지인이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강렬하게 끌리는 감정을 운명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사람일수록, 실은 익숙한 결핍의 냄새를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슴이 뛰고 불안하면서도 강렬하게 끌릴 때, 그걸 '드디어 내 짝을 만났다'는 신호가 아니라 '내 무의식이 익숙한 패턴을 감지했다'는 경고로 한번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다. 이건 학술적으로 확립된 용어라기보다는 애착이론을 바탕으로 한 하나의 해석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지루해도 좋은 사람 곁에 머물러보는 연습을 하라"는 조언은 방향 자체는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조언을 듣고 바로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간에 포기하는 건,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무의식 패턴을 먼저 인식하지 못한 채 행동부터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그 순서가 뒤집히면 얼마 못 가서 원래 패턴으로 돌아간다. 상담 현장에 있는 지인도 같은 얘기를 했다. 반복강박이나 투사적 동일시 같은, 초기 양육 환경에서 형성돼 성인이 되어서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관계 방식을 바꾸는 건 의지나 결심만으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실질적으로 바꾸려면 전문적인 개입, 즉 심리치료나 장기 상담 과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은 아니다. 첫 단계는 인식이다. '나는 왜 항상 이런 사람을 만날까'라는 질문을 운명 탓으로 끝내지 않고, '내 안에 어떤 패턴이 작동하고 있을까'로 방향을 틀어보는 것. 칼 융(Carl Jung)이 남긴 말처럼,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삶을 지배하고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게 된다. 그 인식의 전환이 출발점이다. 또 하나 실질적으로 연습해볼 수 있는 건,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 화내는 방법보다 나를 잘 대해주는 사람을 밀어내지 않는 연습이다. 건강한 관계에서 느껴지는 평온함을 지루함으로 치부해버리지 않고, 그게 실은 진짜 안전함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한 번만 열어두는 것만으로도 이미 꽤 다른 시작이 된다.

동기 친구 얘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팀장님 패턴을 옆에서 봤을 때, 처음엔 그냥 '저 사람 운이 없네' 혹은 '저 사람 성격 문제네'로 흘려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더 쉬운 해석이었기 때문일 거다. 무의식 패턴이라는 게 불편한 이유는, 결국 변화의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이 개념들을 접할 때 한 가지는 조심했으면 한다. 반복강박이나 투사적 동일시를 '피해자의 무의식이 이걸 불러들였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쪽으로 이동시키는 오류가 생긴다. 이 개념들은 자책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 이해의 도구다. 그 용도를 잘 구분해서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심리학적 개념을 소개하는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관계 패턴이나 정서적 어려움으로 힘드시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전문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참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VtIzaWUDc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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