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임에서 겉도는 느낌, 2차는 굳이 안 가도 되는 느낌, 그렇다고 사람이 싫은 건 아닌 느낌. 저는 오랫동안 이걸 그냥 내향적인 성격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려보니, 이건 내향이나 외향으로 딱 잘라 설명되지 않는 패턴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이름을 하나 붙여봤습니다. 느슨한 소속형. 정식 심리학 용어는 아니고, 몇 년간 주변을 관찰하면서 제가 편의상 정리해 본 표현이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자발적 아웃사이더, 처음 이 패턴을 눈치챘을 때
지난달 대학 동기 모임 단톡방에서 생긴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다들 신이 나서 2차, 3차 장소를 고르는데, 한 친구가 조용히 "나는 1차까지만 할게"라고 남겼습니다. 그러자 몇몇이 바로 "너 삐졌어?", "우리 모임 싫어?"라며 걱정 반 서운함 반으로 물었고, 그 친구는 당황하며 아니라고 해명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따로 커피 한 잔 하면서 그 얘기를 꺼냈더니, 친구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모임 자체는 좋은데, 오래 붙어있는 게 딱히 필요하지 않은 거라고. 근데 그걸 설명하기가 항상 어렵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때는 그냥 "낯을 좀 가리는구나" 하고 넘겼는데, 곱씹어볼수록 그건 낯가림도 피곤함도 아니었습니다. 집단에는 기꺼이 참여하지만, 거기서 강한 소속감이나 정서적 충전을 딱히 원하지 않는 방식이었습니다. 함께 있어도 마음 한켠은 늘 혼자인 감각을 유지하는 사람, 이게 제가 말하는 느슨한 소속형입니다.
참고로 심리학에는 내향-외향 스펙트럼의 중간값을 가리키는 양향성(ambivert)이라는 정식 용어가 따로 있습니다. 다만 제가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건 그 개념과는 다릅니다. 외향성 점수의 높고 낮음보다는, 소속감 자체를 얼마나 필요로 하느냐라는 별개의 축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 내향인: 사회적 상황이 기본적으로 에너지를 소모시키며, 혼자만의 시간으로 충전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 외향인: 사람들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얻고,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에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느슨한 소속형: 모임에는 참여하지만, 소속감보다는 그 자리에서의 역할이나 목적에서 의미를 찾는 쪽에 가깝습니다.
내향-외향의 중간이 아니라, 아예 다른 결의 이야기라는 게 제가 느낀 핵심입니다.
소속감 없이도 멀쩡한 사람들이 받는 오해
회사 마케팅팀에 그런 동료가 있습니다. 회의에서 먼저 의견을 꺼내는 편은 아닌데, 맡은 역할이 생기면 누구보다 꼼꼼하게 해냅니다. 회식 자리에서도 다들 시끄럽게 어울리는 와중에 혼자 조용히 관찰하듯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자리가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굳이 적극적으로 끼어들 필요를 못 느끼는 것뿐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는 오해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저 사람 우리 싫어하는 거 아냐?"이고, 다른 하나는 "왜 저렇게 혼자 있어?"입니다. 그 동료도 비슷한 말을 들어봤다고 했습니다.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데, 주변에서 상처받은 거냐고 먼저 걱정해준다고요.
왜 이런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성격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심리학 모델인 빅파이브(Big Five)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빅파이브는 외향성, 친화성, 성실성, 신경증, 개방성이라는 다섯 가지 축으로 성격을 설명하는 틀인데, 각 특성을 이분법이 아니라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본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즉 한 사람이 외향성은 낮으면서 성실성은 높은 조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제가 본 동료들도 딱 그런 조합에 가까웠습니다. 사교적으로 나서지는 않지만, 맡은 일은 흔들림 없이 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들의 이유 있는 행동
대학 후배 중에 학생회장까지 했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 후배가 한 말이 이 주제를 생각하면서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려면 그 자리가 필요했을 뿐이에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겨서가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그 역할을 택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때는 그냥 특이한 성격이려니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이게 꽤 전형적인 패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사람들은 집단 내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보다,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루고 싶은 욕구가 더 크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남들의 박수보다 "내가 이걸 해냈다"는 감각 자체에서 더 큰 만족을 얻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실제로 성격심리학에서는 성실성(conscientiousness)이 높은 사람일수록 조직 안에서 안정적으로 성과를 내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꽤 오래전부터 축적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1991년에 발표된 한 메타분석 연구는, 성실성이 직무 성과를 가장 일관되게 예측하는 성격 요인이라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외향성처럼 눈에 띄는 특성이 아니어도, 꾸준함과 책임감만으로 조직에서 제 몫을 해내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제 후배도, 마케팅팀 동료도 정확히 그런 유형이었습니다.
이 관찰이 준 위안과, 그래도 남는 물음
솔직히 이 패턴을 정리해보고 나니 꽤 위안이 됐습니다. 모임에서 끈끈하게 녹아들지 못하는 사람, 2차 안 가도 별로 아쉽지 않은 사람을 결핍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연결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게 반가웠습니다. 주변에서 이걸 설명하기 어려워하던 친구들 얼굴이 몇 명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걸리는 지점도 있었습니다. 이런 유형화가 너무 편해지면, 사람들이 자기 행동을 지나치게 손쉽게 라벨링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사 관련 일을 하는 지인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MBTI 열풍 때 "저는 I라서요"라는 말이 관계의 갈등을 봉합하는 면죄부처럼 쓰이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름 붙인 느슨한 소속형이라는 표현도, 잘못 쓰이면 "저 사람 원래 그런 성격이라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성급한 이해로 흐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이런 성향이 조직에서 늘 좋은 평가로 이어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마케팅팀 동료를 보면서도 생각했는데, 실제 조직에서는 자기 존재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저평가되거나 승진에서 밀리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성실성이 성과를 만든다는 연구 결과와 별개로, 그 성과가 눈에 잘 띄지 않으면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 부분은 개념 하나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도 이 관찰이 제게 남긴 건, 저와 주변 사람들을 설명하는 언어가 하나 더 생겼다는 감각입니다. 모임에서 소외감 대신 물리적으로는 함께 있으면서도 정서적으로는 한 발 떨어져 있는 감각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게 고장난 게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혹시 스스로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셨다면, 이 글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관찰과 경험을 정리한 글이며, 심리학적 진단이나 전문적인 상담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대인관계나 정서적인 어려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면, 가까운 상담센터나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담해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