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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어려운 이유 (연두부형, 인지행동, 자존감)

by 가치생산자16 2026. 6. 6.

영국 성인의 46%가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보고 한참을 멍했습니다. 절반 가까운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건데, 그게 남의 얘기처럼 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연두부형 소통,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발표를 마쳤을 때 선배가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수고했어. 근데 이 정도는 기본 아니야?" 저는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자책했고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저는 선배 앞에서는 의견도 제대로 못 내는 사람이 됐습니다. 회의 시간에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어차피 무시당하겠지"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제 유형은 수동적 연두부형이었습니다.

수동적 연두부형이란, 상대의 공격적인 말이나 행동을 그냥 허용하고 아무런 경계도 긋지 않는 소통 패턴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 속을 끓이고, 심지어 "왜 그때 말 한마디 못 했을까"라며 자기 자신을 공격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감정이 쌓이면 상대의 별 뜻 없는 말도 왜곡해서 해석하게 된다는 겁니다. 제가 딱 그랬습니다. 선배가 중립적인 말을 해도 "또 나를 무시하는 건가" 싶어 예민해졌으니까요.

소통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동적 연두부형: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고 경계를 긋지 않음. 혼자 자책하는 패턴
  • 단호박형: 부드럽지만 분명한 태도. 건강한 소통의 기준점
  • 불도저형: 상대를 공격하거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
  • 돌려가기형: 겉으로는 수동적인 척하면서 공격 의도가 있는 수동 공격적 패턴. 가시 돋친 칭찬이나 통제적 행동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어떤 유형이든 고정된 건 아닙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유형 파악은 낙인을 찍는 게 아니라 자신의 패턴을 알아차리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인지행동치료가 알려준 것, 반응 말고 대응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는 영국 국립 심리치료 서비스에서 핵심 치료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CBT란, 어떤 상황에서 자동으로 떠오르는 부정적 사고 패턴을 인식하고, 그 생각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수정해 나가는 구조화된 심리 치료법입니다.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가 아니라 구체적인 기술을 훈련하는 방식입니다.

CBT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입니다. 자동적 사고란, 어떤 자극이 왔을 때 의식하지 못한 채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으로, 이것이 감정과 행동을 결정짓습니다. 선배의 말을 들었을 때 제가 순간적으로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라고 느꼈다면, 그게 바로 자동적 사고가 작동한 겁니다.

그래서 CBT에서는 반응(reaction)과 대응(response)을 구분합니다. 반응은 감정이 즉각적으로 행동으로 튀어나오는 것이고, 대응은 잠깐 멈추고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시도해 본 방법은 이겁니다. 당황스러운 말을 들었을 때 바로 반박하거나 굳어버리는 대신, "잠깐,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짧게 되물어보는 것입니다. 이 한마디가 시간을 벌어주고, 그 짧은 사이에 감정과 행동 사이에 간격이 생깁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했습니다. 입에서 나온 첫 문장은 "그 말이 좀 혼란스러웠어"였는데, 떨렸고, 목소리도 작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저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 작은 경험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소통은 성격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말이 처음에는 그냥 위로처럼 들렸습니다. 직접 써보고 나서야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기술은 연습으로 늘고, 연습은 시도에서 시작됩니다.

영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인 외로움과 고립감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맞먹는 건강 위험을 유발합니다(출처: NHS England). 이게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신체 건강과 직결된 문제라는 겁니다. 소통이 불편해서 혼자 삭히는 패턴이 반복될수록, 몸도 함께 소모되고 있는 셈입니다.

자존감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신뢰로, 단순한 자신감과는 다릅니다. 자신감이 막연한 긍정감이라면, 자기 효능감은 실제 경험을 통해 축적되는 구체적인 능력감입니다.

자존감도 비슷한 구조입니다. 적당한 시련을 단계적으로 넘어서면서 쌓이는 것이지, 책을 읽거나 누군가에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자존감 열풍이 한때 크게 일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존감을 다루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만으로는 자존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도 그 시기에 관련 책을 꽤 읽었지만, 읽는 동안은 뭔가 채워지는 것 같다가 책을 덮으면 다시 제자리였습니다.

제 경험상 변화는 작은 시도에서 왔습니다. 모임에서 14명에게 일일이 인사하지 않고 그냥 나와본 것, 선배 앞에서 짧게 "혼란스러웠어"라고 말해본 것. 이런 것들이 "해봤더니 별일 없었다"는 데이터를 머릿속에 쌓아줬습니다. 그게 자기 효능감이 되고, 그것이 결국 자존감의 뿌리가 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연습과 시도로만 해결된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직장 내 위계나 가정환경, 반복된 트라우마처럼 구조적인 조건이 소통 방식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술을 배우기 이전에 안전한 환경이 먼저 필요한 경우도 분명히 있고요. 개인 노력의 가치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걸 함께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성인의 자존감 관련 수치를 보면, 코로나 이후 성인의 약 46%가 자신의 자존감이 낮다고 응답했습니다(출처: Mind UK). 영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도 SNS의 과잉된 비교 문화 속에서, 타인의 성취를 보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인지 왜곡(cognitive distortion) 패턴이 굉장히 흔해졌습니다. 인지 왜곡이란 현실을 사실과 다르게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사고 오류로, 자존감을 지속적으로 갉아먹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소통이 어렵다면, 먼저 자신이 어떤 패턴으로 반응하는지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 유형을 알면 자책이 조금 줄어들고, 대신 "그럼 어떻게 해볼까"로 생각이 옮겨갑니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됩니다. 다음번에 불편한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한번 되물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치료 조언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U9SHC4mB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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