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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하고 딱 한 달 행복했다 — 아무리 채워도 허전한 이유, 심리학으로 풀어봤습니다

by 가치생산자16 2026. 7. 24.

열심히 살면 행복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승진하고 나서 딱 한 달 만에 그 기쁨이 사라지는 걸 직접 겪고 나서는 그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더 가지면 더 채워질 것 같은데, 실제로는 빈자리만 커지는 이유가 뭔지 — 이 글에서 그 구조를 풀어봤습니다.

열심히 달릴수록 왜 더 허전해지는가 — 기준선의 함정

몇 년 전 저는 승진을 위해 정말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주말도 없었고, 퇴근이라는 게 형식적인 개념이 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발령장을 받고 난 뒤의 기쁨은 딱 한 달이었습니다. 두 달째부터는 이미 그 자리가 '원래 내 자리'처럼 느껴졌고, 눈은 자연스럽게 그 다음 직급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쾌락 적응이란, 좋은 일이 생겨도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는 뇌의 자동 조정 기능을 의미합니다. 뇌의 도파민은 '좋은 것을 가졌을 때'가 아니라 '예상보다 더 좋을 때' 더 크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같은 월급엔 심장이 잘 뛰지 않지만 예상 못한 보너스엔 뛰는 것처럼요. 그리고 그 보너스도 세 번쯤 반복되면 그냥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는 것 같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건 '기준선 이동'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기준선 이동이란 새로운 성취나 소유가 생길 때마다 뇌가 기대치를 슬그머니 한 단계 올려버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채워도 늘 비어 있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전 직장에서 30년을 다닌 부장님이 퇴임식에서 "이제 와서 생각하니 내가 뭘 위해 이렇게 달렸는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저는 그냥 의례적인 말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분의 기준선은 30년 내내 회사가 조금씩 올려놓은 것이었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복권 당첨자 연구는 이 현상을 숫자로 보여줍니다. 당첨 후 최대 1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에 조사한 당첨자들은 당첨되지 않은 통제집단과 전반적인 행복 수준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친구와의 대화, 아침 식사, 농담을 듣는 것 등)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더 낮게 나타났습니다(출처: Brickman, Coates & Janoff-Bulma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978). 이 연구만 놓고 '돈으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고 결론 내리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는 '기준선이 올라가는 속도를 돈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쪽이 더 정확한 해석에 가깝다고 봅니다. 다만 이 연구는 단일 시점 조사라는 한계가 있고,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 자체를 추적하지는 못했다는 점도 저자들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 좋은 자극이 반복될수록 감정 반응이 둔화되는 현상
  • 기준선 이동: 성취할 때마다 기대 수준이 자동으로 상향 조정되는 뇌의 메커니즘
  • 남의 결승선 추격: SNS 비교 기반 목표 설정이 만성 결핍감을 심화시킬 수 있음
요약: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허전한 이유는 의지 부족이 아니라 뇌의 기준선이 성취만큼 함께 올라가는 구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인데 누구는 버티고 누구는 무너진다 — 잡 크래프팅의 차이

아내가 병원 원무과에서 일할 때 얘기를 들은 게 생각납니다. 같은 부서에서 같은 업무를 하는데, 어떤 동료는 늘 지쳐 보이고 아내는 상대적으로 덜 소진된 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성격 차이겠거니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둘이 그 일을 정의하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동료는 "서류 처리하는 일"로 봤고, 아내는 "환자들이 덜 불안하게 입원 절차를 밟도록 돕는 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이라고 합니다. 잡 크래프팅이란 직업 자체를 바꾸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스스로 재정의함으로써 직무 만족도와 지속력을 높이는 방식을 뜻합니다. 실제로 병원 청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바닥을 닦는다"고 여긴 직원보다 "환자가 회복할 환경을 만든다"고 여긴 직원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소진 수준이 낮고 만족도가 높은 경향을 보였습니다.

요즘 후배들 중에 열심히는 하는데 표정이 늘 지쳐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요즘 세대는 체력이 약한 건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들이 향하고 있는 결승선이 자기 것이 아닐 가능성이 꽤 높아 보입니다. 남의 연봉, 남의 직함, SNS 속 남의 라이프스타일을 기준점으로 삼는 순간 아무리 달려도 늘 뒤처진 사람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미국 러시대학교(Rush University) 알츠하이머병 센터의 퍼트리샤 보일(Patricia Boyle) 교수 연구팀이 치매가 없는 노인 1,238명을 최대 5년간 추적한 연구에서, 삶의 목적 점수가 높은 상위 10% 집단은 하위 10% 집단에 비해 사망 위험이 약 40%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Boyle et al., Psychosomatic Medicine, 2009). 특별한 약을 먹은 것도, 특별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 하나가 수명에 그만한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결과입니다. 저는 이 수치가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 잡 크래프팅(Job Crafting): 직무 자체를 바꾸지 않고 일의 의미를 스스로 재구성하는 심리적 전략
  • 목적 기반 동기: 외부 보상이 아닌 내적 의미에서 동력을 얻는 방식으로 소진 속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
  • 삶의 목적 지수(Purpose in Life): 뚜렷한 목적을 가진 사람일수록 스트레스 회복 속도와 관련 건강 지표가 좋게 나타나는 경향
요약: 같은 일을 해도 그 일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소진 속도와 지속력을 가를 수 있습니다.

쾌락이 아니라 의미를 채워야 하는 이유 — 의미치료가 말하는 것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가 그 극한의 환경에서 관찰한 것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끝까지 버틴 사람은 몸이 강한 사람만은 아니었습니다. 내일 눈을 떠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관찰에서 출발한 것이 의미치료(Logotherapy)입니다. 의미치료란 인간의 근본적인 동기를 쾌락이나 권력이 아닌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에서 찾는 심리치료 이론으로, 프랭클이 평생에 걸쳐 정립했습니다.

프랭클은 의미가 세 곳에서 온다고 보았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일),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어떤 태도로 마주하느냐. 세 번째가 가장 와닿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엔 "고통에서 의미를 찾으라는 게 말이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10대 시절 다이빙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제리 롱(Jerry Long)이 입에 막대기를 물고 한 글자씩 타자를 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사가 된 사례를 프랭클의 책에서 접하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행복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구분이 이 맥락에서 중요해 보입니다. 하나는 쾌락적 행복(Hedonic Wellbeing)으로, 맛있는 음식이나 물질적 성취처럼 즉각적인 만족을 주지만 기준선 이동에 의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소멸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의미적 행복(Eudaimonic Wellbeing)으로, 누군가에게 보탬이 됐을 때나 스스로 옳다고 믿는 일을 해냈을 때 차오르는 충만함입니다. 이 두 번째 행복은 상대적으로 쉽게 달아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채우려고 했던 것들을 돌아보면 거의 다 쾌락적 행복 쪽이었습니다. 승진, 연봉,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결과물들.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구조적으로 채워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James Pennebaker)의 연구에서는 가장 힘들었던 경험을 하루 15분씩 나흘간 솔직하게 글로 쓴 참가자들이 이후 몇 달간 병원 방문 횟수가 줄고 관련 지표도 개선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억누른 고통을 언어화하는 것 자체가 의미를 찾는 과정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 의미치료(Logotherapy):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를 인간의 핵심 동기로 보는 프랭클의 심리치료 이론
  • 쾌락적 행복(Hedonic Wellbeing): 즉각적 만족 중심으로 기준선 이동에 취약
  • 의미적 행복(Eudaimonic Wellbeing): 관계·창조·고통 수용에서 비롯되며 비교적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충만감
요약: 쾌락을 아무리 채워도 허전한 이유는 의미 없는 방향으로 달려왔기 때문일 수 있으며, 의미치료는 그 방향을 바꾸는 데서 출발합니다.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어느 방향으로 열심인가가 관건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직업을 바꾸거나 삶을 뒤엎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하는 일이 결국 누구에게 어떻게 닿는지, 딱 한 줄만 다시 써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저도 아직 그 과정 안에 있고, 완성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PMwky0x0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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