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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했는데 왜 기쁘지 않을까 — 성취 뒤에 숨은 감정의 결핍

by 가치생산자16 2026. 8. 27.

승진 발표가 난 날, 전 직장 선배는 기쁜 표정보다 "이제 더 잘해야 되는데"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주변에서 다 축하해주는 자리였는데 혼자 다음 프로젝트 걱정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때는 그냥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와서 보면, 성취 다음에 와야 할 감정의 한 단계가 통째로 빠져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흔히 "눈이 높다"는 진단이 붙는다. 그러니 기준을 낮추면 해결된다는 처방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런데 실제로 들여다보면 기준의 높이보다는 기준의 경직성이 더 본질적인 문제인 경우가 많다. 상황이 달라져도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전혀 조정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선배가 딱 그랬다. 연차가 오르고 역할이 복잡해졌는데, 예전에 실무자로서 혼자 처리하던 기준을 팀장이 된 뒤에도 똑같이 자신에게 들이댔다. 일이 느려진 게 아니라 일의 성격 자체가 달라진 건데, 그걸 인정할 내적 허락이 없었던 거다.

이 지점에 관한 심리학 연구가 실제로 있다. 목표를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조정하거나, 필요하면 내려놓고 다른 목표로 옮겨가는 능력을 다루는 연구인데, 컨콜디아 대학교의 카스텐 브로쉬(Carsten Wrosch)와 동료들이 2003년 발표한 논문이 자주 인용된다. 목표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주관적 웰빙 수준이 높게 나타났다는 결과다(출처: Wrosch, Scheier, Carver, & Schulz, 2003, PubMed). 기준을 버리라는 얘기가 아니라, 기준이 상황에 맞춰 숨을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의 성적 순위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건 통계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좋은 조직에 들어가면 초반에 못하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 그런데 경직된 기준을 가진 사람은 이런 변화를 곧바로 '실패'로 읽어버린다.

인사팀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이 부분과 겹친다. 부서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은 직원이 축하 인사를 받으면서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지인은 그 모습을 보면서 축하보다 걱정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결과가 좋았는데도 그 감정이 내부에서 처리되지 않은 것이다. 성과와 다음 도전 사이에 있어야 할 감정적 회복 공간을 스스로 없애버리고, 그 자리를 자기 비난으로 채워 넣는 셈이다. 성과를 내고 곧바로 다음 비교나 목표로 넘어가버리기 때문에, 성취감이라는 감정이 들어올 틈이 아예 생기지 않는다.

긍정심리학 쪽에서는 이걸 '음미하기(savoring)'의 부재로 설명하기도 한다. 좋은 경험을 의식적으로 붙잡고 음미하는 과정 자체가 회복탄력성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성취를 곱씹으며 잠시 만끽하는 것도 이 음미하기 전략 중 하나로 꼽힌다(출처: PositivePsychology.com, Savoring in Positive Psychology). 이 감정 인식 단계를 의식적으로 확보하지 않을수록 동기와 회복탄력성이 더 빨리 소진된다는 게 관련 연구들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현재에 만족하면 발전이 없다"는 문장을 어느 프로팀 훈련장 벽에서 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더 나아가고 싶은 욕구가 성장의 연료가 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이 말이 내 안의 유일한 목소리가 될 때 시작된다. 여기서 도움이 되는 게 '중간 기착지'라는 비유다. 장거리 항공편이 연료를 채우고 승무원을 교체하기 위해 잠깐 들르는 경유지처럼, 목표를 향해 가는 여정 중간에 지금까지의 성취를 의식적으로 확인하고 감정적으로 충전하는 시간을 뜻한다. 종착지가 아니기 때문에 멈추는 게 포기가 되지는 않는다. NBA 역사상 손꼽히는 완벽주의자였던 마이클 조던도 잘한 경기를 곱씹는 시간이 다음 경기를 버텨내는 원동력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가 완벽주의를 버렸다는 뜻이 아니다. 채찍질하는 목소리는 그대로 두면서, 잘한 걸 확인하는 시간도 함께 가졌다는 것이다.

다만 이 사례를 그대로 가져다 쓰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솔직히 짚고 싶다. 마이클 조던에게는 곱씹을 하이라이트가 차고 넘친다. 매일 비슷한 업무를 처리하며 사는 보통의 직장인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성취'로 인식해야 하는지부터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방향은 맞는데,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그렇다면 실제로 뭘 해야 할까. "기준을 낮춰라", "완벽주의를 내려놓아라" 같은 조언은 솔직히 막연하다. 고개는 끄덕여지는데 행동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형성된 패턴은 머리로 이해한다고 곧바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자비(self-compassion)라는 개념이 여기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무조건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잘못을 눈감아주는 게 아니라, 지금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판단 없이 관찰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텍사스 대학교의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와 동료들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자비 수준이 높은 청소년·청년일수록 심리적 웰빙과 회복탄력성이 더 안정적으로 유지됐다(출처: Neff & McGehee, 2010, Self and Identity).

상담 일을 하는 지인 은주가 했던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잘했을 때 잠깐이라도 스스로를 인정하는 연습 자체가 내면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연습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처음부터 잘 안 되는 게 당연하고, 그걸 또 못한다고 자책하면 악순환이 된다. 실질적인 첫걸음은 이런 거다. 성취를 이루고 곧바로 다음 걱정으로 달려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딱 한 박자 멈추는 것. "아, 내가 또 그 단계를 건너뛰고 있구나"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들어올 여백이 조금은 생긴다. 기준을 낮추는 게 아니라, 기준과 나 사이에 작은 완충지대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연습에 가깝다.

다만 이걸 순전히 개인의 몫으로만 돌리는 데는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사팀 지인이 말한 그 직원의 사례처럼, 조직이 구조적으로 끊임없는 비교와 평가를 강요하는 환경이라면 개인의 자기자비 연습만으로 버텨내기엔 한계가 있다. 자기자비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개인의 자각과 함께, 성과 중심 평가 문화에 대한 조직 차원의 고민이 같이 가야 진짜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만족을 느끼는 능력은 나태함이 아니라 회복의 힘"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살짝 위로용 문장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선배가 결국 몇 년 뒤 번아웃으로 팀을 떠나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나서는 그 말의 무게가 달라졌다. 성취 이후의 감정 단계를 반복적으로 건너뛴 결과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가까이서 본 셈이다. 기준을 낮추는 게 아니라 기준과 자신 사이에 작은 완충지대를 두는 것, 그리고 잘한 걸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는 시간을 사치가 아니라 다음을 위한 연료로 보는 것. 오늘 하루 어디서 한 박자 멈출 수 있을지, 한 번쯤 찾아보시면 어떨까 싶다. 이 글의 개념들은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일 뿐이고, 반복적인 무기력이나 번아웃 증상이 이미 심하게 느껴진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 전문가와 직접 이야기 나눠보는 쪽을 권하고 싶다.

참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GoXmDMHh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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