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향인도 외향인도 아닌 제3의 유형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들이 너무 많아서, 결국 끝까지 찾아보게 됐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라미 카민스키가 제안한 '오트로버트(Otrovert)'라는 개념입니다. 국내에서는 이양인이라는 번역어로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내향과 외향 사이가 아니라, 아예 다른 방향
보통 사람의 성격을 설명할 때 내향형과 외향형이라는 두 축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오트로버트는 스페인어 'otro(다른)'와 방향을 뜻하는 어근이 결합된 말로, 직역하면 '다른 방향을 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게 양향인(Ambivert)인데, 양향인은 내향과 외향 사이를 상황에 따라 오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반면, 오트로버트는 애초에 집단 소속감이라는 축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방향이 다른 겁니다.
이 개념을 제안한 라미 카민스키는 뉴욕에서 40년 넘게 진료해온 정신과 전문의입니다. 우울이나 불안 같은 뚜렷한 임상적 문제가 없는데도 집단 안에서 만성적인 단절감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만나왔고, 그 경험에서 나온 개념이 오트로버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카민스키 본인도 스스로를 오트로버트라고 밝혔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출발한 개념이라는 뜻이죠.
비유를 하나 들자면, 공연장에서 외향인은 무대 위로 올라가 함께 즐기고 내향인은 객석에서 조용히 감상합니다. 그런데 오트로버트는 그 사이 어딘가가 아니라, "저 조명은 어떻게 저렇게 만든 걸까" 하고 무대 장치 쪽을 궁금해합니다. 소속의 축 위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가짜 외향인처럼 보이는 사람들
작년 부서 워크숍에서 지켜본 한 대리가 떠오릅니다. 겉으로는 분위기를 잘 띄우고, 발표나 팀 과제에서는 누구보다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회식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갔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딱히 더 있을 필요를 못 느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처음엔 그냥 피곤했나 보다 했는데, 오트로버트 개념을 알고 나서 그 말이 다르게 읽혔습니다.
카민스키가 설명하는 오트로버트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역할이 주어진 상황에서는 매우 능동적으로 움직이지만, 그 역할이 끝나는 순간 사교적 연대감을 유지해야 할 동기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대학 동아리 선배 한 명도 비슷했습니다. 동아리 활동 중에는 늘 리더 역할을 도맡았지만, 뒤풀이 자리에서는 어색해하다가 일찍 자리를 떴습니다. 본인 말로는 "목적이 있는 모임은 재밌는데, 그냥 어울리기 위한 자리는 유독 힘들다"고 했습니다.
목적 없는 스몰토크보다 깊고 구체적인 대화를 선호하는 성향도 여기서 이어집니다. 스몰토크는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나누는 가벼운 대화를 말하는데, 오트로버트는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에너지를 소진하고 진지한 주제에서 활기를 띠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인사 없이 조용히 자리를 뜨는 방식을 두고 흔히 '아일랜드식 퇴장'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제 주변에도 정확히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 지인은 그걸 오랫동안 자신의 성격적 결함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집단 압력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의 강점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ADHD나 고감각인(HSP), 자폐 스펙트럼처럼 서로 다른 신경학적 특성을 병리가 아니라 인간 다양성의 일부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오트로버트 개념도 큰 틀에서는 이런 흐름 위에 있습니다. 집단의 압력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다수가 당연시하는 전제를 다르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공감 능력에 대해서는 저도 처음에 좀 의아했습니다. 소속감에 덜 집착하는 사람이 공감을 잘한다는 게 직관적으로 맞지 않아 보였거든요. 카민스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흔히 말하는 공감이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라는 자기 투영 방식이라면, 오트로버트의 공감은 "저 사람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라는 상대 중심의 시각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집단의 감정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보는 습관이, 역설적으로 개인 맞춤형 공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오히려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기 편한 상대로 꼽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직업적으로는 혼자 몰입해서 수행하는 방식의 일—연구, 창작, 분석처럼 개인의 집중도가 성과를 좌우하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도 내향·외향이라는 이분법이 인간 성격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꾸준히 논의해왔는데, 관련 내용은 APA 성격심리 개관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을 방패로 쓰면 안 되는 이유
이 개념을 주변에 이야기했을 때 반응은 크게 둘로 갈렸습니다. "그거 나 아닌가?"와 "그래서 뭐가 달라지냐"는 반응이었는데, 저는 두 번째 반응이 더 중요한 질문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신경다양성 개념이 대중적으로 퍼지면서, 이를 자기 이해의 도구가 아니라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패로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저는 오트로버트라 회식은 힘들어요"라는 말이 배려를 구하는 언어가 아니라 거리를 두는 언어로 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보고식 설문의 한계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트로버트 성향을 확인하는 테스트 역시 스스로 답하는 자기보고 방식인데, 이런 방식은 응답 당시의 기분이나 최근 경험에 따라 결과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게 관련 연구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자기평가만으로 성격을 판단할 때의 한계에 대해서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PMC에 게재된 자기보고·타인평가 비교 연구에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로는 유용하지만, 점수 하나로 정체성을 고정해버리면 오히려 스스로를 좁은 틀 안에 가두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개념을 가장 유용하게 쓰는 방법은, 특정 상황에서 왜 에너지가 소진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쓰고, 필요할 때는 사회적 가면을 유연하게 쓰고 벗는 연습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면을 쓰는 게 패배가 아니라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는 시각,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실용적인 조언이라고 느꼈습니다.
다름은 결함이 아니다
오트로버트 개념이 말해주는 것은 결국 단순합니다. 사람이 집단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은 결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접하고 나서 저도 주변의 몇몇 사람들을 다시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상한 게 아니라, 방향이 달랐던 것뿐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도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이 드셨다면, 우선 그 느낌을 하나의 참고점 정도로만 받아들이시길 권합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언어가 하나 더 생겼다고 여기되, 그 언어가 관계를 좁히는 핑계가 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다음 단계입니다. 이 글은 심리학 개념을 소개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질환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지속적인 단절감이나 관계의 어려움으로 실제 불편을 겪고 계시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상담 전문가와 상의해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