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에 유독 한 사람에게만 날을 세우는 사람을 본 적 있으신가요. 저도 비슷한 장면을 꽤 오래 지켜봤습니다. 대학 동아리 후배가 특정 선배를 집요하게 깎아내리는 걸 봤을 때, 처음엔 그냥 사이가 나쁜가보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단순한 갈등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르시시즘이라는 심리 개념이 그 퍼즐의 한 조각이 되었고, 그 이후로 이 주제를 꽤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나르시시스트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오만하고, 자기 자랑만 늘어놓고, 주변을 다 무시하는 사람을 떠올리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접해보니 그건 외연적 나르시시즘, 즉 표면 위로 드러나는 과대성을 가진 유형에 더 가까운 묘사였습니다. 자기 우월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타인의 칭찬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면 내연적 나르시시즘은 훨씬 조용하고 은밀하게 작동합니다. 쉽게 말해 겉으로는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믿음을 놓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내가 안 되는 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환경이 나를 이해 못 해서"라는 식의 방어가 대표적입니다.
제가 지켜봤던 동아리 후배가 정확히 그런 패턴을 보였습니다. 잘 안 풀릴 때마다 탓할 대상을 찾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후배가 밉기보다는 안쓰럽다는 주변 반응이 더 많았습니다. 그게 내연적 나르시시즘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악의가 잘 보이지 않으니 주변이 오히려 공감해버리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투사입니다. 자신이 인정하기 싫은 감정이나 특성을 타인에게 귀속시켜버리는 방어기제를 말합니다. 내가 열등하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자아가 무너지기 때문에, 그 감정을 옆 사람에게 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셈입니다. 회사 팀장이었던 지인이 승진한 동료를 두고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반복했던 것도, 지금 돌이켜보면 자신의 불안을 그쪽으로 밀어낸 것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팀원들에게는 나름 세심했다는 점에서, 내연적 나르시시즘이 꼭 나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자기애성 성격을 다루는 여러 심리학 논의에서도 이런 특성이 반드시 장애 수준이 아니더라도 대인관계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참고: 미국심리학회 APA). 핵심은 정도의 문제이지, 나르시시즘 자체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연적 자기애가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지, 그 씨앗은 대부분의 사람 안에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를 들여다보면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지점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달라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심리적 해석만 있고 출구가 없으면, 결국 이해라는 이름으로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상담 쪽 일을 하는 지인이 한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이해하는 것과, 그 행동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것은 별개의 작업이라고요. 저는 그 말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
상담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수용은 단순히 나는 괜찮다는 자기 위로가 아닙니다. 진짜 자기와 가짜 자기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진짜 자기란 결핍과 부끄러움까지 포함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고, 가짜 자기란 그 결핍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낸 페르소나입니다. 나르시시즘의 핵심은 이 진짜 자기를 수용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제 친구 중 하나는 부모 이혼 이후 오랫동안 자신을 특별한 불행의 주인공으로 여겼는데, 상담에서 네 불행은 특별하지 않은 흔한 불행 중 하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오히려 편해졌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비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은 비로소 자기 현실을 직면한 순간이었던 셈입니다.
공감과 동조를 구분하는 것도 여기서 중요합니다. 공감은 상대의 감정 상태를 함께 느끼는 것이고, 동조는 그 감정의 논리까지 옳다고 확인해주는 것입니다. 정말 힘들었겠다는 공감이지만, 맞아 그 사람 때문에 네가 안 된 거야는 동조에 가깝습니다. 동조는 단기적으로 위안이 될 수 있지만, 내연적 자기애의 핵심 믿음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구분이 실제 관계에서 지키기 굉장히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힘들어할수록, 옳고 그름보다 먼저 편을 들어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니까요.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건 구조의 문제입니다. 내연적 자기애가 우리나라에 유독 많다는 진단에 저도 공감하는 편입니다. 어릴 때부터 성적으로 줄 세우고, 그 서열이 자기 가치와 동일시되는 환경에서 자라면 열등감과 수치심이 내면에 자리 잡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에 가깝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지인은 학생들 사이의 비교 문화가 개인 상담 몇 회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학업 경쟁이 심한 환경일수록 청소년의 자기 효능감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국내 교육 연구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내용입니다(참고: 한국교육개발원). 개인이 자기 수용을 위해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그 개인을 둘러싼 비교 중심의 문화도 같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이 주제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는, 어딘가에서 내 얘기처럼 들리기 때문일 겁니다. 저도 솔직히 이 내용을 들여다보면서 저거 나한테도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특정 캐릭터나 주변 사람을 분석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경험, 그게 이런 심리 이야기의 진짜 쓸모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낙인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열등감과 수치심이 어디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조금 더 보이게 되는 것.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이 글은 심리학적 개념을 소개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는 글일 뿐, 특정인의 진단이나 전문적인 심리 상담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스스로나 주변 사람의 어려움이 실제로 마음에 걸리신다면,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으시길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