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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많아도 번아웃되지 않는 사람들의 비밀: 도전적 요구와 심리적 자원의 차이

by 가치생산자16 2026. 7. 14.

퇴근하고 나면 기진맥진한데, 막상 오늘 한 일을 떠올리면 딱히 뭘 했는지 기억이 없는 날이 있습니다. 일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라 어떤 일을 했는지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저도 최근에야 그 차이를 몸으로 실감했고, 조직심리학 연구 결과가 그 감각을 언어로 정확하게 설명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이 많아도 번아웃 안 되는 사람,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저희 부서에 예전 부서장님이 계셨습니다. 처음 팀장 자리에 앉으셨을 때, 주변에서 다들 "저 자리 앉으면 얼굴 반쪽 될 거다"라고 수군거렸습니다. 일이 두 배는 늘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몇 달이 지나고 보니 오히려 얼굴에 생기가 돌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저 분은 원래 리더 체질인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요즘에 와서야 그게 체질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조직심리학에서는 이걸 심리적 자원(Psychological Resources)의 개념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여기서 심리적 자원이란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충전되는 내면의 에너지, 즉 유능감·자율성·관계적 연결감 같은 요소들을 의미합니다. 신임 리더가 되는 순간, 단순히 업무량만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조직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유능감(Competence),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자율성(Autonomy), 팀원과 주고받는 관계적 연결감(Relatedness)이 동시에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늘어날 때, 일의 양이 많아져도 번아웃이 아닌 활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으로도 잘 알려진 이 프레임은 심리학자 고(故)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 1942~2026)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이 수십 년간 함께 연구해온 이론입니다. 여기서 자기결정이론이란 인간이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기본 심리 욕구를 충족할 때 내재적 동기가 높아진다는 이론을 말합니다(출처: Self-Determination Theory 공식 사이트 — 이론 소개 페이지). 에드워드 데시는 2026년 2월 향년 83세로 별세했으며, 그가 리처드 라이언과 함께 다져온 이 이론은 지금도 조직심리학과 동기 연구 전반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부서장님이 팀장이 되고 나서 더 생기가 돌았던 것도, 이 세 가지 욕구가 한꺼번에 충족되는 구조로 일이 바뀐 결과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요약: 번아웃은 일의 양보다, 그 일이 심리적 자원을 채워주는지 여부로 갈릴 수 있습니다.

일의 속성을 들여다보면 번아웃의 원인이 보입니다

옆자리 후배가 요즘 사수 없이 프로젝트 하나를 통째로 맡았습니다. 업무량은 확실히 저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표정은 오히려 저보다 밝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보고서 양식 맞추기, 이미 완성된 자료 재정리, 회의록 취합 같은 일들을 처리했습니다. 퇴근할 때 후배보다 훨씬 더 기운이 빠져 있었는데,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니 일의 성격 차이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조직심리학에서는 업무 요구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하나는 도전적 요구(Challenge Demands)이고, 다른 하나는 방해적 요구(Hindrance Demands)입니다. 도전적 요구란 처리하고 나면 성장감·성취감이 남는 일로, 어렵더라도 심리적 자원을 오히려 보충해 주는 속성을 가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방해적 요구란 해내도 보람이 없고, 경계가 모호하며, 조직 내 불필요한 마찰이나 잡무처럼 심리적 자원을 일방적으로 소진시키는 일을 뜻합니다. 실제로 여러 조직심리학 연구에서도 방해적 요구는 소진(exhaustion) 및 번아웃과 뚜렷하게 연결되는 반면, 도전적 요구의 긍정적 효과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결과가 함께 보고되고 있어, 두 요구를 무 자르듯 나누기보다 참고할 틀 정도로 받아들이는 편이 안전할 것 같습니다.

이 차이를 짐작하게 하는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의료진의 번아웃입니다. 환자를 직접 만나 "감사합니다"라는 피드백을 즉각 받는 의사와, 영상 판독처럼 결과가 지연되거나 오판 시에만 눈에 띄게 지적받는 업무를 하는 의사 사이에는 번아웃 경향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견해가 여러 의료계 보고서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얘기처럼 들릴 수 있는데, 실제로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일의 결과가 눈앞에서 보이는지, 즉 자신의 영향력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지가 핵심 변수 중 하나로 보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짚고 싶습니다. 도전적 요구와 방해적 요구의 경계가 이론처럼 깔끔하게 나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도전적으로 보이는 일도 조직 정치와 뒤섞이거나, 아무리 잘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가 반복되면 방해 요인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아래는 두 가지 요구의 차이를 정리한 것입니다.

  • 도전적 요구(Challenge Demands): 끝내고 나면 성장한 느낌이 남고, 결과가 눈에 보이며, 유능감·자율성·관계성이 함께 올라가는 일
  • 방해적 요구(Hindrance Demands): 해내도 티가 나지 않고, 경계가 모호하며, 조직 정치나 잡무처럼 심리적 자원을 소진시키는 일
  • 복합 상황: 도전적으로 시작했어도 인정 없는 성과 압박이 계속되면 방해 요인으로 전환될 수 있어, 일의 속성은 고정된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요약: 번아웃의 원인은 일의 양보다 그 일이 도전적 요구인지 방해적 요구인지에 더 크게 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열정 이론을 알면 지금 자리에서 버티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번아웃을 다루다 보면 결국 "그래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적합 이론(Fit Theory)과 개발 이론(Develop Theory)이라는 구분이 나옵니다. 적합 이론이란 처음부터 나에게 맞는 일이 존재하고,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반면 개발 이론이란 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잘하게 되고, 잘하다 보면 좋아지게 된다는 관점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 졸업 연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됩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을 때까지 안주하지 말라는 그 메시지는 많은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주변을 둘러보니, 그 말을 믿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어중간한 시점에 지쳐버린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연설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적합 이론이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공식은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심리학자 댄 맥아담스(Dan McAdams)의 연구는 여기서 다른 방향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맥아담스가 말하는 내러티브 아이덴티티(Narrative Identity)란 자신의 경험을 어떤 이야기로 구성하느냐가 이후의 행동과 회복탄력성을 결정한다는 개념을 말합니다(출처: Northwestern University, Dan P. McAdams 교수 프로필). 같은 하루를 보내고도 "오늘도 치여서 힘들었다"와 "오늘은 이 부분에서 내가 뭔가 기여했다"는 서사가 다음 날의 번아웃 저항력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훈련은 일기 쓰기나 짧은 메모만으로도 시작해볼 수 있습니다.

개발 이론가들은 초기 성과는 낮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적합 이론가와 최종 성과 차이가 거의 없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다만 스트레스 내성에서는 개발 이론가가 좀 더 유리한 편으로 보입니다. "나는 이 일에 딱 맞아"라고 믿는 사람일수록 부정적 피드백을 받을 때 더 크게 흔들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개인마다 타고난 그릇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마인드셋 하나로 다 해결된다는 결론은 좀 성급하다고 봅니다. 다만 지금 내가 적합 이론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 관점 자체를 한 번쯤 점검해 볼 가치는 있어 보입니다.

요약: 적합 이론보다 개발 이론의 관점으로 일을 대할 때 스트레스에 조금 더 강할 수 있고, 자신의 서사를 성장 방향으로 쓰는 연습이 번아웃 예방의 실질적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번아웃을 막으려면 달력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달력에 적힌 일들의 성격을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도전적 요구인지 방해적 요구인지, 그리고 그 일에서 영향력을 직접 체감하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오늘 하루가 끝난 뒤 딱 한 줄만 써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오늘 내가 한 일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가." 이 질문 하나가 서사를 바꾸고, 그 서사가 내일의 에너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hHwxku4K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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