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꽤 오랫동안 제 머릿속 목소리가 곧 '저'라고 믿었습니다. 그 목소리가 내리는 판단, 분석, 걱정이 전부 다 진짜 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뇌과학이 말하는 건 조금 달랐습니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좌뇌가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겁니다.
해석 장치: 좌뇌는 지금도 당신의 선택을 조작 중입니다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느끼는 감정이나 판단이 100% 여러분 자신의 것이라고 확신하시나요?
세계적인 뇌과학자 V.S. 라마찬드란 박사는 우뇌(right hemisphere)가 손상된 환자들을 관찰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서 우뇌란 신체의 왼쪽을 담당하고 공간 인식, 감정 처리 등을 관장하는 뇌의 오른쪽 반구를 말합니다. 우뇌가 손상되면 왼쪽 신체가 마비되는데, 일부 환자들은 왼손이 꼼짝도 하지 않는데도 "이미 움직였다"라고 주장하거나,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라는 식으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대신, 좌뇌(left hemisphere)가 그럴듯한 이야기를 즉석에서 지어낸 겁니다. 좌뇌란 언어와 논리, 분석적 사고를 담당하며 상황을 해석하고 서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는 뇌의 왼쪽 반구입니다.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의 실험은 더 직접적으로 와닿았습니다. 거의 동일한 잠옷 네 벌을 늘어놓고 고르게 했더니,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맨 오른쪽을 4배 더 자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이유를 물으면 "질감이 더 부드러워요", "색이 밝아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연구진이 "사실 인간은 오른쪽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랬을 수 있다"고 알려줘도 단 한 명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참가자는 연구진에게 항의까지 했다고 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해봤습니다. 직장에서 주식 손실이 생겼을 때, 저는 "이 종목의 펀더멘털(fundamental)이 탄탄하니까 버티는 거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여기서 펀더멘털이란 기업의 실적, 재무구조, 성장성 같은 기본적인 가치 지표를 뜻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돌아보면 그냥 손절이 무서웠던 거였습니다. 좌뇌가 불편한 현실을 덮을 그럴듯한 논리를 찾아낸 것이죠.
이런 현상을 인지신경과학에서는 컨파뷸레이션(confabulation)이라고 부릅니다. 컨파뷸레이션이란 기억의 공백이나 인지적 불일치를 메우기 위해 뇌가 무의식적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현상으로, 거짓말이 아닌 뇌의 자동 반응입니다. 이 현상이 뇌 손상 환자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킹스 칼리지 런던의 롤랜드 찬 연구진에 따르면 사람들이 감사함을 느낄 때 우뇌 쪽에서 더 큰 활동이 포착되며,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우뇌 대회 피질이 더 발달해 있었습니다(출처: 킹스 칼리지 런던). 좌뇌의 해석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뇌과학자 크리스 나이바우는 이 좌뇌의 해석 장치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첫 번째 변화라고 말합니다. "지금 머릿속에 든 판단이 나 자신이 아니라 해석 장치의 작동임을 한 번이라도 알아차리면, 그 이야기에 자동으로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자아 착각과 우뇌 감각: 멈추지 않는 것과 게임처럼 사는 것
그렇다면 좌뇌의 이야기를 알아챈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한때 일기를 매일 썼고, 운동도 꾸준히 나갔고, 책도 읽었습니다. 그러다 '바쁘다'는 이유로 하나씩 미루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삶이 눈에 띄게 무기력해졌습니다. 그냥 불만족스럽다 싶었는데, 나중엔 저 자신을 미워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미워함도 좌뇌가 만들어낸 이야기였습니다. "이 정도도 못 하는 나는 별 볼 일 없다"는 내러티브를 스스로 만들고 거기에 갇혀 있었던 거죠.
롤러코스터를 탈 때가 생각납니다. 서서히 올라가는 그 순간의 공포감, 숨막힘. 저는 그걸 무서움이라고 생각했는데, 내려오고 나서 느끼는 후련함과 즐거움은 전혀 다른 종류의 감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올라갈 때 비명을 지른 건 좌뇌였고 내려오면서 신나 했던 건 우뇌였던 것 같습니다. 말도 논리도 필요 없는 그 순수한 감각 말입니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가 여기서 관련이 있습니다. DMN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뇌에서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회로로, 자기 참조적 사고, 즉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끊임없이 처리하는 영역입니다. 좌뇌의 이야기 만들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명상을 시작하면 처음에 갑자기 온갖 잡생각이 쏟아지는 이유도 바로 이 DMN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이바우가 제안하는 방법 중 하나는 단순합니다. 생산성도 없고 쓸모도 없어 보이는 일을 아무 이유 없이 해보는 것입니다. 저도 그 이후로 이유 없이 동네를 걸어보거나, 목적 없이 낙서를 해봤는데, 이상하게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머릿속이 훨씬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좌뇌가 잠시 쉬는 틈에 다른 무언가가 정리를 해준 느낌이었습니다.
한 도박 실험에서는 사람들에게 숫자 카드 묶음 네 개를 주고 총 100번 카드를 뽑게 했습니다. A, B 묶음은 큰 이득도 있지만 큰 손실도 있었고, C, D 묶음은 소소하게 따고 소소하게 잃는 구조였습니다. 사람들의 손바닥 피부전도반응(GSR)을 측정했더니, 의식적으로 A, B가 불리하다는 걸 깨닫기 훨씬 전인 10번째 시도 즈음부터 이미 A, B에 손을 뻗을 때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피부전도반응(GSR)이란 피부의 전기 저항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긴장이나 불안이 높아질수록 땀샘이 활성화되어 수치가 오릅니다. 우뇌와 무의식이 좌뇌의 분석보다 훨씬 먼저 답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출처: Iowa Gambling Task 원본 연구, University of Iowa).
삶을 잘 살아가려면 때로는 엄청난 노력과 극복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식 손실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고정 수입을 충분히 키워놓는 게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고, 내 능력 밖의 위기를 한 번 버텨내야 다음번엔 '이 정도론 내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좌뇌가 만드는 이야기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야기가 힘을 잃을 만큼 실제 경험이 쌓여야 한다는 점도 빠뜨리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어색해도 몇 번 말하다 보면 그게 가장 싸게 위기를 넘기는 방법이라는 걸 몸으로 알게 되듯이 말입니다.
나이바우가 제안하는 우뇌를 활성화하는 방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무 이유 없이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산책을 떠나는 것
- 명상이나 요가처럼 언어와 분석 없이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활동
- 감사함을 의식적으로 연습하는 것 (우뇌 활성화와 직접 연결됨)
- 직감이 말할 때, 좌뇌의 분석이 개입하기 전에 한 박자 멈추고 느껴보는 것
법륜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눈 하나가 안 보이는 걸 불행으로 삼을 건지, 하나가 보이는 걸 행복으로 삼을 건지는 본인의 선택"이라고요. 좌뇌가 만든 이야기인지 알면서도 그게 전부인 것처럼 살지, 아니면 그 이야기를 내가 선택한다는 걸 알면서 살지.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저는 좀 늦게 배웠습니다.
"천천히 가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는 걸 두려워하라"는 말을 오래 마음에 담아왔는데, 어느샌가 저도 멈춰 있었습니다. 좌뇌가 만들어준 그럴듯한 이유들 속에서요. 지금은 다시 걷고 있습니다. 이번엔 뇌가 하는 말을 조금은 더 거리를 두고 듣는 연습을 하면서요. 혹시 지금 머릿속 목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느껴지신다면, 그 목소리가 전부 여러분이 아닐 수 있다는 걸 한 번만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