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저도 처음엔 그 부장님이 이해가 안 됐습니다. 자녀들 다 키워놓고 큰 프로젝트 하나 마무리하고 나서 갑자기 바이크를 사셨을 때, 뒤에서 다들 수군거렸고 저도 거기에 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분이 이상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 행동을 너무 단순하게 읽었던 거였다는 걸.
같은 헬멧, 다른 머릿속 — 라이더 유형과 감각추구 성향
주말 아침 국도에서 나란히 달리는 바이크들을 보면 전부 같은 무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안에 완전히 다른 이유를 품은 사람들이 섞여 있습니다. 당신 주변의 라이더는 과연 어떤 이유로 핸들을 잡은 걸까요?
심리학 연구들은 라이더를 크게 다섯 가지 심리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스트레스 해소, 소속감 추구, 의도적 고독, 감각추구 성향, 자기회복. 이 중 가장 오해를 많이 받는 건 네 번째, 감각추구(Sensation Seeking) 유형입니다. 여기서 감각추구란 강렬한 자극과 새로운 경험에 끌리는 기질을 뜻합니다. 흔히 무모한 사람 이미지와 겹쳐 읽히지만, 연구자들은 이 둘을 구분해서 봅니다.
몰입(Flow) 상태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감각추구 성향이 강한 라이더는 위험 구간에서 오히려 시야가 넓어지고 사고가 선명해지는 특징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서 몰입이란 집중이 거의 힘들이지 않고 유지되는 최적의 심리 상태를 의미합니다. 보통 사람이 얼어붙을 코너에서 이들의 판단은 오히려 정밀해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물론 이 설명이 위험한 주행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도 좀 찜찜했던 이유가 있었는데, 사고 통계는 쏙 빠진 채 좋은 사례만 부각되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첫 번째 유형인 스트레스 해소 라이더에 대해서는 UCLA 셰멜 신경과학연구소(Semel Institute) 연구팀이 라이더 50여 명을 대상으로 측정한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20분간 라이딩을 한 뒤 스트레스 지표로 쓰이는 코르티솔 대 DHEA-S 비율이 28%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코르티솔이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부신피질이 분비하는 호르몬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불안감과 피로감이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 연구는 오토바이 제조사인 할리데이비슨이 후원한 연구라는 점은 분명히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그대로 믿기보다는 "바이크 위에서는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는 구조적 설명 쪽이 더 설득력 있다고 봤습니다. 스마트폰도 못 보고, 다른 생각을 끼워 넣을 틈이 없는 상태. 그게 뇌에 주는 강제적인 휴식이라는 해석 말입니다(출처: Vaughn et al., Brain Research, 2021).
세 번째 유형인 의도적 고독 라이더도 흥미롭습니다. 영국 더럼대학교(Durham University) 심리학과의 투이-비 응우옌(Thuy-vy Nguyen) 교수 연구팀은 단 15분의 자발적 고독만으로도 흥분이나 불안 같은 각성 수준이 낮아지고 차분함이 올라온다는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자발적'이라는 단어입니다. 당해서 혼자인 것과 골라서 혼자인 것은 뇌가 다르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헬멧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일인실이라는 표현이 이 유형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출처: Durham University, 투이-비 응우옌 교수 연구 소개).
- 스트레스 해소형: 바이크는 강제적 주의 집중 장치. 하루 중 유일하게 머릿속이 조용해지는 시간
- 소속감 추구형: 도로보다 바이크를 세워두고 나누는 짧은 대화가 진짜 목적
- 의도적 고독형: 헬멧 안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공간. 혼자인 것이 취약함이 아닌 선택
- 감각추구형: 위험은 목적이 아니라 완전한 각성 상태에 따라오는 조건
- 자기회복형: 책임을 지기 전에 존재했던 자신으로 돌아가는 행위
그 부장님 흉봤던 제가 틀렸습니다 — 자기회복과 분류 틀의 한계
그 부장님이 술자리에서 대학 때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했다고 지나가듯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흘려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한마디가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책임이 삶을 뒤덮기 전에 존재했던 그 사람이, 조건이 갖춰지자 다시 나타난 거였으니까요.
노년 심리학에서는 이 시기를 조금 특별하게 보는 편입니다. 몸은 아직 건강하고, 짊어졌던 책임은 하나씩 내려놓았으며, 아직 나이에 발목 잡히기 전인 구간. 이 시기에 많은 사람이 오래전에 밀어둔 자기 자신을 다시 찾으러 나서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자기회복(Self-Recovery)이라는 개념입니다. 여기서 자기회복이란 외부 역할과 책임에 가려져 있던 본래의 자아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중년의 위기라는 표현이 흔히 붙지만, 그 표현 자체가 이미 이 행동을 부정적으로 프레이밍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아내랑 가끔 그런 얘기를 합니다. 결혼 전엔 뭔가 좋아하는 게 분명히 있었는데, 언제부터 그게 사라졌는지 모르겠다고. 어머니 뵈러 갈 때마다 예전에 하시던 취미들을 다 접으신 걸 보면서, 책임을 짊어지면 자기 자신부터 조용히 내려놓게 되는 것 같다는 걸 실감합니다. 그러니까 그 부장님이 바이크를 사셨을 때 흉봤던 게 지금은 좀 부끄럽습니다. 그분은 무너진 게 아니라 오래전에 세워뒀던 자신을 다시 데리러 가신 거였는데.
그런데 솔직히 이 다섯 가지 분류 자체에 대해서는 좀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사람 심리가 다섯 개 서랍에 딱딱 나뉘어 들어갈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분류를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 "이건 칸막이가 아니라 비율"이라고 빠져나올 구멍을 만든 것도, 어떻게 보면 이 분류 자체가 얼마나 헐거운지를 스스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취미나 행동을 설명하고 싶을 때 심리학 이론과 뇌과학 용어를 가져다 붙이는 방식은,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한 발 떨어지면 결론이 먼저 있고 근거가 나중에 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틀이 완전히 쓸모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이 유형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적용해봤는데,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완벽한 분류가 아니라 대화의 출발점으로 쓸 수 있는 정도의 틀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이유로 뭔가에 올라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까?
결국 저는 그 부장님 덕분에 한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주변 누군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을 때, 그 행동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먼저 물어보는 게 맞다는 것. 갑자기 바이크를 산 사람이든, 등산화를 산 사람이든, 악기를 꺼낸 사람이든. 그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오래된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한 명쯤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이 바로 당신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