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의실에서 손을 드는 횟수가 줄어든 게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도 마흔 무렵부터 그랬습니다. 의견이 없어서가 아니라, 꺼냈다가 또 묻힐까 봐 입을 다물게 되는 그 패턴이요. 그게 나이 탓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이가 아니라 뇌의 작동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학습된 무기력이 쌓이는 방식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이 정립한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학습된 무기력이란,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경험을 겪으면서 "어차피 안 된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면화한 상태를 말합니다. 상황이 실제로 나빠서가 아니라,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낸 내면의 결론이 행동 자체를 막아버리는 겁니다.
솔직히 이 설명을 처음 접했을 때 뜨끔했습니다. 작년 봄에 팀 회의에서 캠페인 방향을 제안했다가 "그건 우리 회사 스타일 아니야"라는 한마디에 정리된 적이 있습니다. 그날은 별일 아닌 척 넘겼는데, 그 이후로 회의에서 입을 먼저 여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의견이 없어진 게 아니라, 꺼내기 전에 이미 포기하는 게 습관이 된 거였습니다.
더 신경 쓰이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셀리그먼의 연구에 따르면 학습된 무기력은 특정 영역에서 형성된 뒤 전혀 다른 영역으로 번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수십 년 동안 "안 된다"는 경험을 쌓은 사람은, 퇴직 후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시작할 때도 시작 전에 이미 "안 될 것 같다"는 감각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 동창 모임에서 누군가 자격증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그 나이에 그게 되겠냐"는 말이 농담처럼 오갔는데, 집에 오는 길에 저도 그 말이 머릿속에 한 번 더 맴돌았습니다. 그게 쌓이면 어떻게 되는지, 이제는 좀 알 것 같습니다.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는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 문제의 출구를 설명했습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이 구체적인 일을 내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뜻합니다. 자존감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자존감이 "나라는 사람의 가치"에 관한 것이라면, 자기 효능감은 "이 특정한 행동을 내가 실제로 해낼 수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반두라의 연구에서 이 자기 효능감을 가장 효과적으로 회복시키는 방법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작은 성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습된 무기력이 실제로 쌓이는 경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반복적인 부정적 경험 → "어차피 안 된다"는 내면의 결론 형성
- 시도 자체를 줄이는 자기 검열(Self-Censorship) 작동
- 새로운 자극이 줄면서 도파민 분비 감소, 무기력 심화
- 무기력이 다른 영역으로 번져 행동반경 전체가 좁아짐
이 패턴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제 경험상의 결론입니다. 알고 나면 적어도 "이 느낌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여지가 생기니까요.
신경 가소성이 바꾸는 것들
"나이가 들면 뇌도 굳는다"는 말을 믿어온 분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1998년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교 피터 에릭슨 연구팀이 이 전제를 뒤집었습니다. 성인의 뇌에서도 새로운 신경 세포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한 겁니다.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해마(Hippocampus) 영역에서 세포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해마란, 새로운 경험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하는 뇌 구조물을 말합니다. 수십 년간 정설로 여겨온 "성인 뇌는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증거에 의해 뒤집힌 것입니다(출처: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NCBI)).
이후 연구들은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개념으로 수렴했습니다. 신경 가소성이란, 새로운 경험을 하면 신경 세포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생기고, 그 연결이 반복될수록 점점 강해지는 뇌의 특성을 말합니다.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연구팀은 70대 노인들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실제로 신경 연결이 새롭게 형성되는 것을 뇌 촬영으로 확인했습니다(출처: University College London). 나이가 장벽이 아니라는 걸 데이터가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중년 이후 멈추는 것처럼 느낄까요. 여기서 편도체(Amygdala) 이야기가 나옵니다. 편도체란, 뇌에서 위험을 감지하고 경보를 울리는 역할을 하는 부위입니다. 문제는 편도체가 실제 위험과 심리적 불편함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낯선 모임에 혼자 나가는 상황과 맹수를 마주치는 상황을 뇌가 비슷한 위협 신호로 처리합니다. 퇴직 후 새로운 걸 시작하려 할 때 몸이 잘 안 움직여지는 그 느낌, 의지가 약한 게 아니라 편도체가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겁니다.
작년 말에 별 생각 없이 동네 문화센터 드로잉 수업을 한 달만 끊어봤습니다. 특별하게 잘 그릴 생각은 없었고, 그냥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첫 수업 끝나고 나오면서 기분이 묘하게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결과를 따지지 않고 무언가를 했다는 감각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후배한테 먼저 커피 한 잔 하자고 연락도 해봤고, 안 가던 독서모임에도 한 번 나가봤습니다. 거창한 변화는 아니지만, 예전보다 "일단 해볼까"라는 생각이 조금 더 쉽게 드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솔직하게 덧붙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늦게 빛을 본 사례들을 일반화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폴 세잔이나 레이먼드 카버처럼 50대 이후에 꽃을 피운 사람들은 결국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생존자 편향이란,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만 부각되고 실패한 사례는 잘 드러나지 않아 왜곡된 결론을 내리게 되는 현상입니다. 똑같이 50대에 새로운 걸 시작했다가 별 소득 없이 끝난 사람도 훨씬 많을 텐데, 그 얘기는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출과 학원비, 부모님 병원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결과를 따지지 말고 일단 해보라"는 말이 한가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 맥락을 너무 가볍게 넘기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실에서 입을 닫아버리는 그 패턴이 학습된 결과라는 설명은 제 얘기처럼 들렸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학습으로 굳어진 건 다른 학습으로 조금씩 풀릴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거창한 결심보다 정말 작은 행동 하나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드로잉 수업 한 달, 독서모임 한 번, 후배에게 보낸 커피 한 잔 제안. 뇌는 이런 작은 자극에도 반응합니다. 지금 당장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지금 이 시점이 아직 제목조차 붙여지지 않은 이야기의 첫 문장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