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게 온전히 상대방 탓일까요? 저는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예전 부서에서 인사를 해도 고개만 까딱하던 선임을 두고 속으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상처는 대부분 내가 먼저 주고 먼저 받으려 했던 자리에서 생긴다는 걸. 이 글은 직장 내 거리두기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특히 빅마우스와 가식적 동료 앞에서 소모되지 않는 방법을 제 경험과 함께 정리한 것입니다.
관계 패턴을 읽으면 감정 소모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가 생기는 구조를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단순한 패턴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가 단답형으로 대응하는데 내가 계속 말을 걸면 모멸감(humiliation)이 쌓이기 쉽습니다. 여기서 모멸감이란 단순한 기분 나쁨이 아니라, 내가 투자한 에너지가 일방적으로 무시됐다는 인지적 손실감을 의미합니다. 저도 직접 경험해봤는데, 이게 쌓이면 상대가 딱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그 사람 자체가 싫어지는 상태가 되더군요.
제가 그 선임에게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말을 걸고, 먼저 친해지려 했을 때 돌아오는 건 늘 "어, 네" 수준의 반응이었습니다. 한동안은 제가 뭘 잘못한 건지 싶어서 계속 신경을 썼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도 똑같이 고개만 까딱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덜 미워졌습니다. 제가 준 게 없으니 잃은 것도 없었던 셈이죠.
이걸 심리학에서는 형평성 이론(Equity Theory)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여기서 형평성 이론이란 인간이 관계에서 자신이 투입한 것과 얻는 것의 비율을 상대와 비교해 평가하며, 그 비율이 균형을 잃었다고 느낄 때 불쾌감이나 관계 회피 행동이 늘어난다는 심리학 이론입니다. 1963년 애덤스(Adams)가 처음 제안했고, 이후 해트필드(Hatfield)와 동료들이 친밀한 관계로 확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TheoryHub, "Equity Theory: A review"). 저는 그걸 이론으로 배운 게 아니라 그 선임 덕분에 몸으로 먼저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잘해주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별로가 되는 사람과, 처음엔 무뚝뚝했는데 알면 알수록 괜찮아지는 사람. 이 두 유형의 차이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자는 초반에 보여줄 패를 전부 꺼내버리는 관계 자산 소진형이고, 후자는 관계가 깊어질수록 새로운 면이 드러나는 축적형이라고 할까요. 제 경험상 입사 초기에 제일 친절하게 챙겨주던 사람과 1년 뒤에도 같은 온도를 유지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 상대가 단답형이면 나도 단답형으로 맞추는 것이 감정 소모를 구조적으로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초반에 과하게 친절한 사람일수록 속 얘기를 천천히 꺼내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 모멸감은 대부분 내가 먼저 기대치를 높였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빅마우스와 가식적 동료, 각각 다른 방어 전략이 필요합니다
빅마우스(big mouth)라는 표현은 보통 수다스러운 사람을 가리키지만, 직장에서의 빅마우스는 조금 다릅니다. 여기서 빅마우스란 타인의 말을 선택적으로 편집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기면서 관계를 분열시키는 유형을 의미합니다. 제가 직접 겪은 사례로는 장모님 쪽 친척 중에 그런 분이 계셨는데, 아내 앞에서 제가 지나가듯 한 말이 이상하게 와전되어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그 자리에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게 됐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자주 쓰는 방식 중 하나가 마중물 전략입니다. "걔 좀 이상하지 않아?", "그 사람 좀 문제 있는 것 같던데"라고 먼저 운을 띄워서 상대의 동의를 끌어낸 뒤, 그 동의를 나중에 자기 입맛에 맞게 퍼뜨리는 방식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수다스러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꽤 계산된 패턴이 있더군요.
이들을 상대할 때 중요한 건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험담의 마중물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 것, 두 번째는 평소에도 단호하고 분명한 어조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모호한 표현은 편집 가능성을 높입니다.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해" 같은 말은 빅마우스에게 가장 다루기 좋은 소재가 되기 쉽습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의 한 칼럼도 직장 내 뒷담화에 휘말리지 않는 법을 다루면서, 대화 주제를 바꾸거나 자리를 피하거나 필요하면 "이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 것을 실질적인 대응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출처: Harvard Business Review, "How to Steer Clear of Office Gossip").
가식적인 동료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가식성(inauthenticity)이란 자신의 진짜 의도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표면적 반응만 내놓는 행동 양식을 의미합니다. 제 회사 후배 중에 뭘 먹을지, 어디 갈지 늘 "아무거나요"라고만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회식이 끝나고 나면 꼭 "저는 사실 그거 별로였는데"라는 말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처음엔 배려심이 많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유형과 함께 있으면 결과가 어떻든 책임이 결정한 쪽으로 쏠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소통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뒤부터 선택지 앞에서 제가 먼저 원하는 것을 분명히 말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상대가 패를 안 보이면 저도 굳이 먼저 보일 필요가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다만 그런 사람과 자주 만나면 지치는 건 사실이라, 접촉 빈도 자체를 줄이는 게 현실적인 방어일 수 있습니다.
- 빅마우스의 마중물 발언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이 원칙 — 평소에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패턴을 쌓아두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분명하고 단호한 말투는 편집 가능한 소재를 줄이는 실질적인 방어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 가식적 동료와의 관계는 깊이보다 빈도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관리하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유형을 정리하고 나서 드는 생각은, 거리두기란 상대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내 감정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조절(self-regulation) 전략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자기조절이란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관계에서 소모되는 이유는 대부분 상대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상대에게 과잉 투자하고 있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유형 분류를 너무 단단하게 믿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의 행동 뒤에 있는 동기는 하나로 단정하기 어렵고,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실용적인 처세 지침으로 참고하되, 사람 자체를 유형으로 고정시키는 건 또 다른 편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써보면서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건 "상대만큼만 대응하기"였고, 나머지는 상황을 보면서 판단하는 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VyKXbGVlOs&list=TLPQMjQwNzIwMjaASEudCFrJpA&index=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