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이 항상 깨끗한 사람은 원래 성격이 깔끔한 걸까요? 저는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주말마다 세탁실 바구니를 뒤적이며 혼자 집을 치우는 뒷모습을 몇 번 보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게 성격 문제가 아니라 심리 구조의 차이일 수 있다는 생각. 그 실마리를 청소와 뇌 에너지의 관계에서 찾아봤습니다.
배경맥락: "나중에 치워야지"가 입버릇이었던 시절
저는 퇴근하면 넥타이를 풀어 의자 등받이에 아무렇게나 걸쳐두고, 양말은 그 자리에서 벗어 발치에 뒀습니다. 아내가 몇 번 말할 때마다 "피곤해서 그래, 주말에 몰아서 하면 되지"라고 했는데, 막상 주말이 오면 또 미루다가 결국 아내가 다 치워놓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저는 그걸 그냥 성격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는 아무리 힘든 날도 저녁 설거지가 끝나면 반드시 싱크대 물기를 마른행주로 닦아내고서야 주무셨습니다. 그때는 그냥 깔끔한 성격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게 어머니만의 심리적 마무리 의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에 어떤 일이 있어도, 그 한 가지만큼은 반드시 끝을 내셨으니까요.
회사에서 예전 부장님도 떠오릅니다. 책상 위 서류철 모서리가 삐뚤어지는 꼴을 못 보던 분이었는데, 그때는 유별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책상에 컵이며 서류며 잔뜩 쌓아두고 일하는 후배들이 마감 직전에 유독 더 허둥대는 걸 자주 봅니다. 우연이라기엔 패턴이 꽤 분명하게 반복됩니다.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자이가르닉 효과란 완료되지 않은 과제가 완료된 과제보다 기억에 더 오래 남아 뇌를 계속 자극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어질러진 물건은 눈에 안 보여도 뇌가 "아직 처리 안 됐어"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쉬고 있는 것 같아도 뇌는 완전히 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 정리되지 않은 물건은 완료되지 않은 과제로 뇌에 등록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뇌는 이를 무의식적으로 계속 처리하려 하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나중에 치워야지"는 어쩌면 뇌에 부채를 쌓아가는 말일 수 있습니다
심리분석: 청소가 에너지를 쓰는 일이라는 착각
일반적으로 청소는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이라고 여겨지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책상 위를 정리하고 퇴근하는 날과 그냥 두고 퇴근하는 날, 다음 날 아침이 실제로 다릅니다. 전날 책상이 치워진 상태로 출근하면 시작이 조금 더 빠른 편입니다. 기분 탓이라고 하기엔 꽤 일관된 차이였습니다.
2011년 프린스턴대학교 신경과학 연구소의 스테파니 맥메인스와 사빈 캐스트너의 연구에 따르면, 시야에 여러 자극이 동시에 존재할 때 이들은 서로의 신경 활동을 억제하며 뇌의 시각 처리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Journal of Neuroscience, McMains & Kastner, 2011). 이 연구가 직접 청소나 정리정돈을 다룬 것은 아니지만, 시야에 물건이 많을수록 뇌가 그 각각을 개별 자극으로 처리하느라 더 많은 자원을 쓸 수 있다는 인지적 과부하(Cognitive Overload)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서 인지적 과부하란 처리해야 할 정보가 뇌의 처리 용량을 초과할 때 집중력과 판단력이 함께 떨어지는 상태를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방 안의 물건들이 여러 개의 알림창처럼 뇌에 계속 말을 걸고 있는 셈이라고 비유해볼 수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제안한 개념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뜻합니다. 열심히 준비한 일이 뜻대로 안 풀리고 인간관계에서 상처받는 일은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책상 위 컵 하나를 제자리에 두는 것은 오로지 제 의지만으로 완결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작은 완료 경험이 "나는 내 삶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호를 뇌에 보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도 함께 살펴볼 만합니다. 여기서 결정 피로란 하루에 내릴 수 있는 좋은 결정의 양이 한정되어 있으며, 사소한 결정이 쌓일수록 이후 판단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어질러진 공간은 "이 옷을 지금 세탁기에 넣을까 말까", "이 영수증을 버릴까 보관할까" 같은 무수한 소결정을 계속 요구합니다. 집이 정돈된 사람들은 의지력이 특별히 강하다기보다, 이런 소결정 자체를 애초에 덜 발생시키는 구조를 만들어둔 것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런 설명이 좀 과하다고 느꼈습니다. 청소 하나에 자기 효능감, 결정 피로, 인지적 과부하를 다 갖다 붙이는 게 너무 매끄럽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실제로 집이 다소 어질러진 채로 살면서도 자존감 높고 생산적인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 경우에는, 이 설명이 완전히 틀렸다고 반박하기도 어렵습니다. 책상 하나 치운 것뿐인데 다음 날 아침 컨디션이 달라지는 건 저에게는 꽤 분명한 경험이었으니까요.
실전적용: 완벽하게 치우려고 하지 않는 것
심리학에서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 이론이 있습니다. 여기서 행동 활성화란 기분이 좋아져야 행동하는 게 아니라, 행동이 먼저 이뤄져야 기분이 뒤따라온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의욕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일단 작은 행동을 시작하면 감정이 뒤이어 변화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 화장실 청소를 시작하고 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경험, 저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단순한 기분 탓만은 아니라, 행동과 함께 뇌의 보상 회로가 작동한 결과일 수 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저는 요즘 퇴근 전 5분을 씁니다. 책상 위 물건만 제자리에 두고 나옵니다. 집에 와서는 넥타이를 걸이에 거는 것 하나만 습관으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별거 아닌 것 같았는데, 이게 쌓이니까 아내한테 잔소리 들을 일도 줄고 퇴근 후 현관문을 여는 기분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한꺼번에 다 치우려고 했으면 또 미뤘을 겁니다.
내적 통제 소재(Internal Locus of Control)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심리학자 줄리안 로터(Julian Rotter)가 제안한 이 개념은 삶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인을 외부 환경이 아닌 자신의 행동에서 찾는 성향을 말합니다. 제 경험상, 집이 치워진 상태는 그 자체로 "지금 이 공간만큼은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줄 수 있습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든 현관문을 열었을 때 정돈된 공간이 보이면 미세하게나마 안도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짚고 싶습니다. 이런 류의 콘텐츠에서 "명문대 연구팀", "신경과학 연구소" 같은 이름은 자주 나오는데, 정작 어떤 논문인지 저자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이 개인적으로는 불편했습니다. 대학 이름만 붙이면 신뢰가 생기는 것처럼 쓰는 건 독자를 좀 가볍게 보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어수선한 환경과 주의력의 관계를 다룬 연구들이 존재하지만, 결과가 항상 일관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저장강박 성향과 관련된 한 연구에서는 실험 조건에 따라 어수선한 환경이 주의력 수행에 뚜렷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결과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Journal of Obsessive-Compulsive and Related Disorders). 그 결과를 청소 습관 하나로 전부 설명하는 건 여전히 단순화가 심하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 한꺼번에 다 치우려 하지 말고, 눈앞의 물건 하나만 제자리에 두는 것부터 시작해봅니다
- 퇴근 전 5분, 잠들기 전 1분처럼 고정된 짧은 루틴으로 습관화해봅니다
- 완벽한 정리가 목표가 아니라, 뇌의 시각적 소음을 줄이는 것이 목표임을 기억해봅니다
어머니가 매일 밤 싱크대 물기를 닦던 모습이 요즘 다르게 보입니다. 그게 깔끔한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하루의 마무리를 스스로 통제하는 나름의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아직 그 경지는 아닙니다. 넥타이를 걸이에 거는 것 하나를 습관으로 만드는 데도 꽤 걸렸습니다.
그래도 제가 확인한 건, 퇴근 전 책상 하나 치우고 나오는 게 다음 날 아침을 조금 다르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자기 효능감 때문인지 인지적 과부하가 줄어서인지는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해보니까 다르더라는 것, 그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오늘 퇴근 전에 책상 위 컵 하나만 싱크대에 갖다 놓는 것부터 가볍게 시작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