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8시간 이상 앉아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27%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뜨끔했습니다. 지난달 건강검진에서 의사가 "요즘 많이 앉아 계시나 봐요"라고 무심코 던진 말이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뇌도 안 쓰면 줄어든다 — 에너지 세이브 모드의 정체
제 하루를 돌아봤더니 꽤 낯이 뜨거웠습니다. 아침에 차 타고 출근해서 자리에 앉고, 점심 먹고 다시 앉고, 퇴근길에도 차 안에 앉았다가 집에 오면 소파에 눕습니다. 제대로 두 발로 걷는 시간이 하루에 10분도 채 안 될 때가 많았습니다.
뇌과학자 로돌포 리나스는 뇌가 생각이 아니라 움직임을 위해 진화한 기관이라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뇌는 몸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를 결정하는 것이 본래 임무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으면 뇌 입장에서는 "지금은 굳이 풀가동할 필요가 없겠구나"라는 판단이 설 수 있습니다. 저는 이걸 뇌의 에너지 세이브 모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여기서 에너지 세이브 모드란 뇌가 스스로 연산 속도를 낮추고 출력을 줄이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스마트폰 화면이 어두워지듯, 뇌도 조용히 꺼져가는 셈입니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이게 단순한 느낌만은 아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생활이 길어지면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가 실제로 위축될 수 있습니다. 캐나다 요크대학교(York University) 연구팀이 2026년 발표한 메타분석에서 약 280만 명 규모의 신체활동 관련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하루 8시간 넘게 앉아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27%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Oye-Somefun et al., PLOS ONE, 2026). 그리고 여기서 더 눈에 띄는 부분 하나. 따로 운동을 하더라도 앉아 있는 시간 자체가 길면 위험이 함께 올라갔다는 겁니다. 운동을 했으니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완전히 통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 오후만 되면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한 느낌 — 뇌가 출력을 낮춘 결과일 수 있음
- 분명히 알던 단어가 입에서만 맴도는 현상 — 해마 위축의 초기 신호일 가능성
- 회의 중 하려던 말이 순간 증발하는 경험 — 유동 지능 저하와 연관될 수 있음
근육이 뇌에 편지를 쓴다 — BDNF라는 기적의 비료
예전에 헬스장을 몇 달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살을 빼려는 목적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몇 달 동안은 아침 업무가 유독 술술 풀렸습니다. 그때는 그냥 컨디션이 좋았나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우연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순간, 뇌 안에서는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라는 단백질이 분비됩니다. 여기서 BDNF란 뇌세포를 살리고 세포 간 연결을 굵게 키우는 물질로, 하버드 의대 정신과 임상부교수 존 레이티가 저서 《스파크(Spark)》에서 '뇌를 위한 미라클그로(Miracle-Gro)'라고 부른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래 비워둔 화분에 물과 영양제를 꽂아주면 시든 뿌리가 다시 숨을 쉬는 것처럼, BDNF가 바싹 말라있던 뇌세포를 다시 깨우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근육이 수축하면 카테콜아민 계열의 신호 물질들이 뇌로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신호 물질들은 뇌혈관장벽을 통과해 직접 뇌 안까지 침투할 수 있습니다. 뇌혈관장벽이란 외부 물질이 뇌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일종의 방어막인데, 운동으로 만들어진 신호 물질은 이 장벽을 통과하는 특수한 성질을 갖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IGF-1이라는 성장인자가 끊어진 신경 연결을 다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여기서 IGF-1이란 근육 운동 이후 분비되어 신경세포 재생과 시냅스 강화를 돕는 단백질입니다.
1998년 스웨덴 연구자 피터 에릭손과 미국 솔크연구소의 프레드 게이지 연구팀은 어른의 뇌에서도 새로운 신경세포가 실제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했습니다(출처: Eriksson et al., Nature Medicine, 1998). 그리고 이후 연구들은 그 신경세포가 잘 자라는 조건 중 하나로 신체 활동을 꼽고 있습니다. 줄어든 뇌를 다시 키운다는 말이 단순한 비유만은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새벽부터 뛰는 진짜 이유
애플의 팀 쿡은 새벽 3시 45분에 일어나 5시면 헬스장에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역시 이른 새벽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좀 회의적이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그럴 여유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그 의심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닐 수 있습니다. 시간과 자원의 여유가 그런 루틴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다만 운동 직후에 일어나는 뇌의 변화를 보면 왜 그들이 굳이 새벽을 택하는지 어느 정도 납득이 갑니다. 운동 직후 30분에서 2시간 사이, 계획과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이 활발하게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전전두피질이란 집중력, 의사결정,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뇌의 앞쪽 부위입니다. 이 시간이 하루 중 머리가 맑고 날카로운 골든 타임일 수 있는 셈입니다.
미국 일리노이주 네이퍼빌 통합교육구 203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정규 수업 전 학생들에게 심박수가 충분히 올라가는 '제로아워(Zero Hour)' 체육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하버드 의대 존 레이티 교수의 저서 《스파크》와 이를 취재한 교육 전문지 보도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읽기 능력에서 더 큰 향상을 보였다고 합니다(출처: Education Week, "Exercise Seen as Priming Pump for Students' Academic Strides", 2008). 운동이 머리를 켠다는 게 학업 성취도 위에 숫자로 나타난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또 한 가지. 근력 운동 직후에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일시적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호르몬이 아니라 의욕, 집중력, 기분 안정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이게 부족해지면 집중이 안 되고 마음이 처지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헬스장 다니던 시절에 이상하게 적극적인 기분이 들었던 게 착각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호르몬이 실제로 달라졌던 것일 수 있으니까요.
체화된 인지 — 의지는 결과이지 출발점이 아니다
아내가 "당신 요즘 운동 안 해서 깜빡깜빡하는 거야"라고 했을 때, 저는 "아 알아, 알아"하고 흘려들었습니다. 그때는 잔소리처럼 들렸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꽤 정확한 진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좀처럼 몸이 안 움직여진다는 거였습니다. 의욕이 생기면 운동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으로 수개월을 버텼으니까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여기서 체화된 인지란 몸의 상태가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입니다. 즉, 마음을 다잡아야 몸이 따라오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이면 마음과 머리가 그 뒤를 따라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오랫동안 순서를 거꾸로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커크 에릭슨(Kirk Erickson) 연구팀은 55~80세 어르신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일주일에 세 번, 40분씩 걷게 하고 다른 쪽은 스트레칭 위주의 활동을 하게 했습니다. 1년 후, 스트레칭 그룹의 해마는 예상대로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걷기를 한 그룹의 해마는 오히려 평균 2% 안팎으로 커졌습니다(출처: Erickson et al., PNAS, 2011). 거창한 고강도 훈련이 아니라 그냥 걸었을 뿐인데도 이런 차이가 나타난 겁니다. 제가 직접 시작해보니 처음에 가장 어려운 건 강도가 아니라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 그 자체였습니다.
결국 운동의 핵심은 강도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래 앉아 있지 않는 것 자체가 뇌를 지키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한 시간에 한 번, 3분만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는 것.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한 층. 버스에서 한 정거장 일찍 내리는 것. 이런 잔 움직임들이 쌓여서 뇌의 에너지 세이브 모드를 서서히 풀어줄 수 있습니다. 의욕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 그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20분 먼저 걷고 나서 맑아진 머리를 경험해야, 그때 의지가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을 처음 접하고 며칠 동안은 "맞는 말이긴 한데 좀 과하게 몰아가는 느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걷기를 한 사람들의 해마가 커졌다는 데이터를 "운동만 하면 뇌가 젊어진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이어버리는 방식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슬쩍 뒤섞어 놓은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원래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운동도 꾸준히 하는 경향이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 요크대학교 연구팀 역시 이번 메타분석 결과가 인과관계가 아닌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유보적인 생각을 감안하더라도, 몸이 먼저 움직여야 마음이 따라온다는 체화된 인지의 방향성 자체는 제 경험에 비춰봐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완벽한 루틴을 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한 시간 앉아 있었다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딱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